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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기념공원 정거장 및 주변안내

부산시티투어는 코스별로 부산의 관광명소를 한번에 돌아보실 수 있습니다.

UN기념공원

UN기념공원 소개

UN기념공원 대표사진
  1. UN기념공원
  2. 승차장소 : UN기념공원 입구
  3. 승강장 주소 :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 779-2
  4. 지하철 : 2호선/대연역
  5. 안내 : 051)607-4541
이곳 유엔기념공원은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로서, 세계평화와 자유의 대의를 위해 생명을 바친 유엔군 전몰 장병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이곳 묘지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이듬해인 1951 년 1 월, 전사자 매장을 위하여 유엔군 사령부가 조성하였으며, 같은 해 4 월 묘지가 완공됨에 따라 개성, 인천, 대전, 대구, 밀양, 마산 등지에 가매장되어 있던 유엔군 전몰장병들의 유해가 안장되기 시작하였다.

1955 년 11 월 대한민국 국회는, 유엔군의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 이곳 토지를 유엔에 영구히 기증하고, 아울러 묘지를 성지로 지정할 것을 결의하였다. 1955 년 12 월 15 일, 한국정부로부터 국회의 결의 사항을 전달 받은 유엔은, 이 묘지를 유엔이 영구적으로 관리하기로 유엔총회에서 결의문 제 977(X)호를 채택하였다.

이에 따라 1959년 11월 유엔과 대한민국간에 ‘유엔 기념 묘지 설치 및 관리 유지를 위한 대한민국과 유엔간의 협정’ 이 체결됨으로써 지금의 유엔기념묘지로 출발하게 되었다.

그 후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 (UNCURK, 엉커크)에 의해 관리 되었으나, 1974년 UNCURK 가 해체됨에 따라, 관리업무가 11 개국으로 구성된 유엔기념공원 국제관리위원회(Commission for the UNMCK)에 위임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유엔기념묘지 (United Nations Memorial Cemetery in Korea, UNMCK) 의 명칭으로 출발하였으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친숙한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2001년 3월 30일 한국어 명칭을 재한 ‘유엔기념공원’으로 변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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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읍성지는 조선시대 동래부의 행정중심지를 둘러싸고 있었던 읍성이다.
충렬사 뒷산에서 마안산을 거쳐 동래향교 뒷산까지의 구릉지와 현재의 동래 시가지 중심지역인 평탄지를 일부 포함하는 지세에 전형적인 평산성(平山城) 형식으로 쌓았다. 산성과 평지성의 장점을 두루 갖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읍성이다.
삼한시대부터 동래에는 거칠산국(居漆山國)·내산국(萊山國)·장산국(?山國)·독로국(瀆盧國) 등으로 불린 작은 국가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동래성에 관한 기록은『고려사』에 보이는 1021년(현종 12)에 동래군의 성을 수리한 것이 처음이다.
조선시대에 동래부는 대일 외교상 중시되어 관아의 규모도 크고, 격식이 높았다. 정3품의 부사가 재임하는 왜적 방어의 제1관문이었다. 1592년(선조 25) 4월 13일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부산진성과 함께 일본군의 1차 공격목표가 되어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을 위시한 군·관·민의 장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최대 격전지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이후 부분 보수되었던 성을 1731년(영조 7)에 동래부사 정언섭(鄭彦燮)이 나라의 관문인 동래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그 규모를 훨씬 크게 고쳐 쌓았다.
이 때의 성이 지금 흔적으로 남아 있는 읍성의 기원이다. 증축된 성의 규모는 성곽의 둘레가 약 3.8㎞였다. 읍성에는 동·서·남·북문과 인생문(人生門) 및 암문(暗門)이 있었고, 각 문에는 문루가 있었다. 동문에는 지희루(志喜樓), 서문에는 심성루(心成樓), 남문에는 무우루(無憂樓), 암문에는 은일루(隱一樓)가 각각 있었다. 중요한 문루였던 남문에는 익성(翼城)을 두었는데, 앞 쪽의 세병문(洗兵門)과 뒤쪽의 주조문(朱鳥門)을
둔 이중 구조로 되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시가지 정비계획 등 으로 평지의 성은 철거되고, 산지에만 성곽의 모습이 남아 있다. 지금 성내에는 북문·인생문·동장대·서장대·북장대가 복원되었고 성벽이 부분적으로 복원·보수 중이다.
그 역사적 가치를 보면 오늘날의 부산시청과 같은 동래부동헌을 비롯한 조선시대 관청 건물과 백성들을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세운 성으로 산지성(山地城)과 평지성(平地城)을 쌓는 기술을 조화시켜 만든 읍성(邑城)으로 임진왜란 때 동래부사 송상현을 비롯한 백성들이 끝까지 싸우다가 돌아가신 곳으로 오늘을 사는 학생, 일반인들에게 역사의 산 교육장이 되고 있다